'난 널 잃어버릴까봐 두려워'
연인 사이에서 심한 집착을 보이는 사람들의 속마음이다.
그들은 상대를 못살게 굴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저 두려운 것이다.
이런 두려움이 지나치면 집착이 된다.
집착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두려움은 욕심의 또 다른 표현이다.
스카이다이빙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은
더 살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두려운 것이다.
오래 살고 싶은 욕심이 없으면
죽는 것은 전혀 두려운 것이 아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싶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 두가지 욕심 또한 지나치면
필연적으로 두려움이 생긴다.
나도 그랬었다.
현재 나는 능력이 10밖에 안 되는데
100을 원한다는 것은 욕심이다.
모두들 100을 갖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목표까지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다.
이것이 지나친 욕심이 고통을 생산하는 경로이다.
또,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과 무기력에 빠지는 경로이다.
2018년 4월.
욕심이 고통을 만든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걸 없애고 싶었다.
절에 들어갔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욕심을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정지었다.
하지만 지금 뒤돌아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나는 욕심을 "전부" 버리려고 했다.
부처님처럼 해탈하고 싶어했다.
수십년간 수련하시는 스님들도 안 되는 일을
내가 하루 아침에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욕심을 "전부" 버리고 싶은 마음 또한
지나친 욕심이었다.
이제 나는 있는 그대로
현재의 나를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었다.
나는 내 영혼이 행복할 수 있는 하루를 보낼만큼
모든걸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그저 지금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면 그만이다.
이렇게 마음을 비우고 나니
너무 가볍다.
자유롭다.
편안하다.
더 잘해야 해.
더 많아야 해.
더 좋아야 해.
더 사랑받아야 해.
이제 그만 이런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이런 헛된 욕심을 쫓는 동안
주변의 무수한 가시들이 내 몸을 찢는 소리는
신경쓰지도 않았다.
어느 순간 팔이 망가지고
좀 더 지나니 다리가 망가졌다.
나는 쓰러졌다.
거꾸로 누워서
내가 추구하던 욕심의 아지랑이를 보며
여전히 헐떡이고 있었다.
뭔가 잘못됬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 생각했다.
문제는 욕심이었다.
나는 욕심쟁이였다.
그래서 나는 쫄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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